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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소개

 
서기훈(1882~1951)

서기훈은 1882년 12월 19일 충남 논산군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고, 1909년 세례를 받았으며, 1941년 6월 남감리회 전도사 직책을 받아 전도생활을 시작하여 1918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22년 원산지방 고저교회, 1923년 간성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23년 집사로 봉사하다가 1925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고저교회를 담임하였다. 1929년 김화교회로 전임되었고, 1931년부터 1933년까지 3년 동안 철원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1934년 원산 구세병원 원목, 1937년 장전 관교동 신고산교회 담임으로 봉직하는 한편, 1940년에는 일제의 박해로 7개월간 고성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했다.

해방 후 1947년 6월부터 철원지방 장흥리교회에서 시무하였다. 그러던 중 1950년 11월 공산군 패잔병들이 침입하여 청년교우 집에 들어와 밥을 얻어먹은 뒤, 뒷동네 청년들과 싸움이 벌어져 공산군 9명이 사망하였다. 그는 이 일로 검거되어 공산군을 사살한 청년의 이름을 대라고 문초를 당한 후 일단 풀려났으나 12월 31일 정치보위부에 다시 검거되었으며, 이듬해인 1951년 1월 8일 암소고개에서 70세의 나이로 총살당했다.

1950년 12월 28일 임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서기훈 목사는 문안차 찾아 온 장흥리교회 속장 권오창에게 “사어당사 비당사 생이구생 불시생(死於當死 非當死 生而求生 不是生, 죽을 때를 당해서 죽는 것은 참 죽음이 아니오. 살면서 생을 구하는 것은 참 생이 아니다)” 라는 유시를 남겼다. 1963년 3월 13일 박창국 감리사의 발의와 장흥교회 교인들의 협조로 예배당 앞에 그의 신앙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비문으로 위의 시구와 요한복음 12장 24절이 기록되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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