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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Underwood. Horace Horton(원한경) (1890~1951)

세대를 이어 헌신한 언더우드 가문의 중심
언더우드 선교사의 외아들 언더우드 2세(원한경)는 1890년 9월,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가 양아들로 삼은 김규식을 형으로 여기며 성장했으며, 7세 때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대학교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언더우드 2세는 1912년 미국 북장로교 교육 선교사 신분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처음에 그는 경신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으며, 연희전문학교가 세워진 1915년 이후에는 연희전문 교수로 일했다. 그에게 1916년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 해였다. 10월에는 아버지 언더우드 1세를 잃는 아픔을 겪었고,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2월에는4년 동안 교제한 서울외국인학교 교사 에델 와고너 선교사와 결혼하는 기쁨을 누렸다.
언더우드 2세는 한국 문화와 민족을 사랑한 선교사였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일본의 잔인한 폭압 정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일제의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 등을 직접 조사했으며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

연세대학교 정착과 발전에 크게 기여
그는 안식년을 맞은 1925년 미국 뉴욕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1926년 다시 한국에 와 연희전문학교 부교장을 거쳤으며, 1934년부터 연희전문학교 3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 발전에 헌신했다. 그는 개화당 인사였던 유길준의 아들 유억겸을 연희전문 부학장으로 임명하고, 최현배, 정인보 등 한국인 교수를 대거 등용하여 연희전문학교를 민족사학으로 발전시켰다. 
언더우드 2세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해 교육을 통한 선교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타협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학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41년 연희전문학교 교장직을 사임했으며, 이듬해 5월에는 일제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된 후 강제로 추방당했다. 그 후 그는 미국에서 1944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편 그는 해방 직후 미군정청 관리로 한국에 다시 돌아와 미군정 문교부장의 고문 등을 역임하며 한국의 대학교육 제도 수립 작업에 참여했다. 1947년 10월에는 미군정청을 사임하고 연희전문학교에 복귀하였고, 이후 연희전문학교를 위해 일했다. 특히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전이 통합될 때에는 새로 발족한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추대되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한국인인 백낙준白樂濬 박사가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도록 한 뒤 자신은 명예총장이 되었다.
해방 후 혼란기였던 1949년 3월, 그의 아내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피살되는 커다란 슬픔을 당했다. 그는 아내를 양화진에 묻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10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심장병이 악화되어 내한 4개월 만인 1951년 2월 타계해 아내 곁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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