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기념재단
> 선교사묘원 > 선교사 소개

선교사 소개

 
Turner, Arthur B.(단아덕) (1862~1910)

한국 성공회 2대 주교로 독립활동 지원
터너 선교사는 한국 성공회 2대주교를 지냈으며, 한국이 일본에 의해 침탈당하는 위기의 시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1862년 영국 솔즈베리(Salisbury)에서 태어난 터너 선교사는 말보로대학(Marlborough College)과 옥스퍼드 키블대학(Keble College, Oxford)을 졸업했으며, 1888년 영국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터너는 사제 서품을 받은 지 8년 만인 1896년 12월 한국 선교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내한 초기 초대 코프 주교를 보좌했으며, 1905년 1월 한국 성공회 제2대 주교로 취임했다. 터너 주교는 주로 인천과 강화도에 집중되어 있던 성공회의 선교 영역을 수원과 충북 진천까지 확대하는 등 교세 확장에 기여했다. 교육을 통한 선교에도 힘을 써 강화도, 수원, 병천, 진천 등지에 학교를 세웠다. 당시 터너 주교는 외국인 선교사가 교회를 경영하면서 모든 경비를 전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국 교인들에 의한 자치와 자립을 추구하였다.
터너 주교는 선교사역 틈틈이 한국의 독립을 지원했으며,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그는 황성YMCA가 창립될 때 12인의 창립이사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또 그는 1907년부터 1910년까지 3대 YMCA 회장을 맡아 이상재, 윤치호 등의 항일운동을 뒷받침하는 등 YMCA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일제의 조선 지배를 향한 침략이 노골화되어 온 민족이 시름에 잠겨 있었는데, 터너 주교는 미국 백화점 완 터너메이커의 후원으로 YMCA 건물을 신축하여 실의에 잠겨 있던 우리 민족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또 그는 상동교회 출신의 전덕기 목사,  YMCA의 이상재, 이승만, 김규식 등을 규합하여서 기독교 연합세력을 만드는 일에도 힘썼다. 

근대 스포츠 도입에도 크게 기여
터너 주교는 한국 근대 스포츠 도입과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학창 시절 축구선수였던 터너 주교는 우리나라에 처음 축구를 소개했고, 관립 영어학교에서 영어와 체육을 직접 지도했으며, 축구팀을 구성해 친선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건장했던 터너 주교는 격변의 시기에 주교로서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다가 1910년 10월 28일 과로로 쓰러졌고, 그날 오후 4시경 인천 성 누가병원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됐다. 
양화진에 있는 터너 주교의 묘비에는 ‘Shew Thy servants Thy Work and Their Children Thy Glory/願主之僕人得見主之行爲願其子孫得觀主之榮光(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고,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들에게 나타내소서)’라는 시편 구절(시편 90:16)이 영어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04084)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합정동)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Tel. 02-332-4155~6 | Fax.02-332-4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