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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Toft, James(두영서) (1865~1928)

구세군 5대 사령관으로 활동
토프트 선교사는 한국 구세군 5대 사령관으로 부임했으나 부임 2년 만에 순직했다.
토프트 선교사는 1865년 영국 와링톤(Warrington)에서 태어나 1884년 구세군사관학교를 나와 구세군 사관이 되었으며, 1890년 스웨덴 출신의 구세군 사관인 힐다랄손(Hildaralson)과 결혼했다. 그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인도 등에서 약 40년 동안 구세군 선교사로 헌신했으며,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인도 북부 구세군 사령관으로 재임했다.
토프트 선교사는 한국 구세군 5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926년 8월에 내한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고산, 영동, 대구, 영덕, 의성, 홍성, 개성, 전주, 해주 등 전국을 돌며 구세군 교회를 방문하고 선교 활동을 독려하는 등 구세군 총책임자로서 의욕적인 선교 활동을 펼쳤다. 또 그는 부임 3개월 만인 1926년 11월, 당시 세계 구세군 사령관을 한국에 초청하는 등  부임 초기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부임 첫해부터 토프트 사령관은 매우 힘겨운 사건을 겪었다. 한국 구세군 내 외국에서 파송된 사관(선교사)과 한국인 사관 사이에서 대우를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 번져 분규사건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 사건은 세계 구세군 2대 사령관인 브럼웰 부스(Bramwell Booth :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의 아들)가 참석한 집회에서 한국인 사관들이 외국인 사관들의 불평등한 대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며 촉발되었다.

1920년대 구세군 분규로 큰 고초 겪어
이 사건으로 인해 구세군 내 외국인 사관과 한국인 사관 사이에 폭력사태가 발생했으며, 급기야 부스 사령관이 방문 일정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사태가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토프트 사령관은 항명죄를 적용해 44명의 시관과 28명의 학생 등 70여 명의 한국인 구세군 관련자를 면직했다. 이 일로 한국 구세군은 교단으로서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었고 교세도 약화되었다. 
이처럼 토프트 사령관의 부임 초기 여러 고난이 이어졌지만 그는 한국 구세군 재건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사령관 재임 중 한국 구세군을 위한 잡지 <사관>을 창간하였고, 여러 권의 교육용 도서를 발간하여 문서 선교에도 힘썼다. 이외에도 정동에 구세군사관학교를 신축했으며, 대구와 개성, 해주 등 여러 지역에 영문(교회)을 세웠다.
새로 부임한 임지에서 발생한 분규 사건으로 인해 토프트 사령관은 매우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1928년 초부터 그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지 20일 만인 1928년 6월 15일 숨을 거두어 양화진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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