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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Avison, Oliver R.(어비신)


근대 의료 개척 선교사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정착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는 1860년 영국 요크셔(Yorkshire)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으며, 산업혁명의 혼한 속에서 살길을 찾아 1866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캐나다 이민 초기 초등학교 시절 에비슨은 학업을 중단하고 수년 간 방직공장에서 노동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에비슨은 1890년 토론토 의대를 졸업한 후 모교에서 외과 교수로 봉직했다. 그는 평소 캐나다 출신 게일 선교사와 펜윅 선교사로부터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전해 들어 선교사의 소명을 품고있었다. 그러던 중 캐나다에 와 강연을 한 언더우드 선교사로부터 조선 선교사로 헌신하라는 권유를 받고 조선에서의 선교사역을 결심했다. 당시 에비슨은 제니 바네스(JennieBarness)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있었으며, 아내는 넷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또 이미 의사로 활동하며 가난을 이겨낸 터라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으며, 향후 5년 동안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로 봉직할 수 있다는 재임용 통보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이같이 캐나다에서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생활이 보장된 상황에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낯선 이국에서의 선교사역을 선택한 것이다.

'제중원'을 '세브란스 병원'으로 재설립
1893년 7월, 온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온 에비슨 선교사는 그해 11월부터 제중원의 책임을 맡아 환자들을 진료하는 한편 황제의 시의로도 활동했다. 당시 제중원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의료진과 시설도 부족했고, 경영 상황도 형편없었다. 민중들의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해서 수많은 전염병이 발생했다.
에비슨 선교사는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서민들이 잘 걸리는 말라리아, 이질, 발진티푸스 등 환경성 전염병 치료에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에비슨 선교사는 당시의 보통 선교사들과는 달리 진보적이고 열린 신앙과 사고를 지니고 있었으며, 조선인에게 좋은 친구 같은 선교사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삶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무어 선교사와 함께 백정 백성춘의 집에 찾아가 직접 치료해 주었고, 1895년에는 백정들에 대한 신분 차별을 없애 달라는 편지를 당시 내부대신 유길준에게 보냈다. 또 그는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정책과 조선 지배를 반기지 않은 몇 안 되는 선교사 중 하나였다.
에비슨은 제중원을 국립병원에서 민간병원으로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1894년 9월부터 제중원 운영을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맡게 되었고, 에비슨 자신이 전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효과적인 진료를 위해서는 소규모 진료소들을 하나로 묶어 규모 있는 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첫 안식년을 맞은 1900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서 한국 선교의 중요성과 과제에 대해 강연하면서, 병원 건립에 필요한 기금 마련을 호소했다.
이러한 바람은 강철회사 사장 세브란스(Louis H. Sevrance)가 병원건립기금을 기부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에비슨 선교사는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남대문 부근 부지를 매입하여 현대적 병원을 세웠으며, 1904년 9월, 구리개에 있던 제중원을 남대문 옆으로 옮기고 이를 ‘세브란스병원’으로 개칭했다. 이후 그는 1925년까지 세브란스병원 병원장으로 재임하며 병원을 발전시켰다.

근대 의학 교육의 개척자
에비슨 선교사는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의 양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899년에 개설한 제중원 의학교를 세브란스병원의학교(1904년)로 개칭하고 1908년 1월, 7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첫 졸업생 중에는 그가 무어 선교사와 함께 치료한 백정 박성춘의 아들 박서양도 있었다. 이 학교는 1913년에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로 성장하였고, 1934년까지 교장으로 일했다.
이외에도 1916년 순직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뒤를 이어서 경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18년 동안 헌신했다. 이 때 에비슨 선교사는 경신학교 대학부를 연희전문학교로 발전시켰으며, 신촌에 학교 부지를 마련해 이전함으로써 ‘신촌시대’를 시작했다. 이처럼 그는 의료와 교육, 두 분야에서 탁월한 선교 업적을 남겼다.

에비슨 선교사는 1934년 연희전문학교 교장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장에서 퇴임했다. 32세에 한국에온 지 43년만이었다. 이때 세브란스 병원장은 한국인 의사 오긍선 박사에게, 연희전문학교 교장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아들 원한경 선교사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35년 선교사 직에서도 은퇴하고 귀국했다.
평생을 함께 한 아내 제니 에비슨(Jennie Barnes Avison 1862~1936)은 귀국 이듬해인 1936년 9월 별세했고, 에비슨 선교사는 1956년 미국 플로리다 주 피터스버그St. Petersburg에서 소천했다.
에비슨 선교사 부부는 모두 10남매를 두었는데, 성인이 된 7남매 중 3남매가 한국에서 선교사로 헌신했다. 어릴 때 죽은 딸쌍둥이가 양화진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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