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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Scranton, Mary F.(시란돈 대부인) (1832~1909)

이화학당을 설립한 한국 여성교육의 개척자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한 우리나라 근대 여성교육의 선구자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183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벨처타운(Belcher Town)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정은 청교도의 후예로서 아버지와 오빠, 사촌이 모두 감리교 목사를 지낸 명문가였다. 메리는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New Haven)의 사업가 윌리엄 스크랜턴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나, 1872년 남편이별세하고 말았다.
평소 선교사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메리 스크랜턴은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에서 활동했으며,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William B. Sxranton) 부부가 미 감리회 해외선교회의 후원을 받아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가게 되자 자신도 미 감리교 여성해외선교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에 들어왔다. 1885년 6월, 그녀의 나이 52세였다.
한국에 온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성벽 주위에 버려진 아이들과 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집에서 학당을 시작했다. 단 한 명을 데리고 시작한 그녀의 학당은 점차 학생이 늘어나 1년 만에 50명이 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고취시켜 주었다. 그리고 1891년 이화학당이 제자리를 찾은 후 학당장 자리를 후배 로드와일러 선교사에게 물려주었다.

아들 스크랜턴 선교사를 한국으로 이끌어
이화학당장의 자리를 후배 선교사에게 물려주었지만 그녀의 선교 열정이 더욱 깊어졌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직접 전도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가 전도에 주력하여 아현교회와 동대문교회, 남대문(상동)교회를 개척했다. 1897년에는 남대문교회에 여성기술학교인 공옥학교를 설립했고, 1906년에는 엄비의 후원을 받아 진명여학교를 설립하는 일에도 기여했다. 그녀는 시흥, 안양, 수원 등 서울 와곽 지역을 돌며 순회전도 활동을 펼쳤으며, 그 과정에서 수원에 삼일학교와 매향여학교를 세웠다.
그녀는 여성 전도자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890년경부터 전도부인을 대상으로 성경 교육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후일 감리교부인성경학원이 되었고 훗날 협성여자신학교로 발전했다.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인 1907년 75세 때 쓴 보고서를 보면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의 조선인을 향한 사랑과 선교의 열정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여성들을 향한 사랑으로 24년 동안 헌신한 스크랜턴 선교사를 한국인들은 ‘시란돈 대부인’이라고 불렀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아들 스크랜턴 선교사가 감리교 선교사를 사임한 1907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었다. 선교사 직을 사임한 아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그녀는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결국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1909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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