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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Pieters Family

Pieters, Elizabeth C.

구약 번역 공로자 피터스 선교사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1873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Chicago)에서 태어나 노스웨스턴대학(Northwestern University)을 졸업했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인디아에서 선교활동을 펼칠 꿈을 갖고 학생 선교운동에 참여했다. 
1902년 가을, 그녀는 한국의 미국성성공회와 영국성서공회에서 권서로 일하다가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에 온 피터스 선교사와 결혼했다. 피터스 선교사 부부는 결혼 후 2년 동안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헌신했는데 그곳의 기독교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피터즈 선교사 부부는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피터스 선교사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뒤인 1904년 9월 남편과 함께 내한했다. 
내한 당시 엘리자베스 피터스 선교사는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 중 폐결핵에 걸려 투병 중이었다. 결국 엘리자베스 피터스 선교사는 내한 1년여 만인 1906년 1월 4일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됐다. 남편 피터스 선교사는 선교사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숨진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결핵치료실을 기증했다. 

Pieters, Eva H. F.(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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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의료 선교사
에바 필드는 1868년 11월 미국 동부 인디애나 주 리버티(Liberty)에서 태어났으며, 아이오와 주 디모인(Des Moines)에서 자랐다. 그녀는 음악 재능이 뛰어나 한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고, 그 후에는 보험전문가가 되기 위해 아이오와경영대학(Iowa Business College)에서 경리와 부기를 배우고 실습에도 임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의료 선교사의 꿈을 품게 되었고, 이를 위해 1893년 노스웨스턴대학 여성의학부(Northwestern University Medical School)에 입학하여 1896년에 졸업했다.
시카고 메리톰슨병원(Mary Thompson Hospital)에서 수련의를 마친 1897년 봄, 에바 필드는 한국 선교사를 지원했으며, 그해 가을, 미국 북장로교 의료 선교사로 내한했다. 에바 필드 선교사는 에비슨 선교사의 제중원 여성부에서 간호 선교사 에스더 쉴즈와 함께 수년간 일했다. 1904년 세브란스병원이 완공된 후에는 세브란스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에바 필드 선교사는 1908년 피터스 선교사와 결혼하였고, 이후에는 의료 사역과 복음 사역에 헌신했다. 그녀는 1913년까지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 선교사로, 이후에는 황해도 재령과 평안도 선천에서 복음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마지막으로 1927년부터는 세브란스의과대학에서 임상의로 일했다.
에바 필드 선교사는 가정과 교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모든 기력이 소진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헌신했다. 특히 그녀는 정신여학교에서 의료 교사로서의 일과 서울의 어린이를 보호하는 일에 매우 활동적으로 참여했다. 재령에서는 학생들을 위해 수학 교과서를 집필했고, 수년간 찬송가 편집과 출판 업무에도 종사하는 등 에바 선교사는 다방면의 분야에서 선교에 헌신했다. 
에바 필드 선교사는 1932년 7월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으며, 피터스 선교사는 그녀 사후  추모사업으로 세브란스병원 안에 치과 수술실을 기증했다. 

<참고>
Pieters, Alexander A.(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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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시편 한글 번역과 구약 개역에 기여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선교사 피터스는 특히 구약성경 번역에 크게 기여했다.
피터스 선교사는 1871년 러시아(현 우크라이나 지역) 에코테르노슬라브Ecoternoslav에서 출생한 유태계 러시아인이다. 1895년 4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1895년 초 취업을 위해시베리아로 가는 길에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연히 들른 교회에서 화란개혁교회 선교사 피터스(Albertus Peters) 목사를 만나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 세례를 받았으며, 이름도 피터스로 개명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성서공회 일본지부 총무였던 루미스H. Loomis 선교사의 권유로 미국성서공회 한국 담당 권서로 1895년 5월 13일 내한하게 되었다. 기독교로의 개종과 미국성서공회 권서로 내한하는 과정이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성서공회 권서로 내한한 피터스는 히브리어에 능통한 자신의 장점을 살려 구약 시편을 번역하였고, 1898년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구약성경인 <시편촬요>를 번역, 출간했다. <시편촬요>는 당시 우일하게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경으로서 이후 8년 동안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는 피터스의 재능을 간파하여 그에게 신학 공부를 권유했다. 이에 피터스는 1900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가 매코믹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미국 뉴 앨버니 노회에서 목사가 되었고,  러일전쟁이 끝난 1904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피터스 선교사는 1906년 구약성서번역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926년부터는 구약개역위원으로 활동했다. 구약 개역 작업은 피터스, 레이놀즈 선교사와 한국인 이원모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으며, 1937년에 완성되었고 그 이듬해에 출판됐다.

서울 동쪽 지역 교회 개척에도 큰 성과
피터스 선교사는 성경 번역에만 힘쓴 것이 아니라 서울 동쪽 광주, 양평 지역 선교와 교회 개척에도 힘을 써 많은 교회를 설립했다. 또 시작詩作에도 능했는데, 오늘날 사용하는 <새찬송가>에는 그가 지은 찬송시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와 ‘주여 우리 무리를(75장)’ 두 편이 실려 있다.
피터스 선교사는 결혼을 두 번 하였는데 그의 두 아내 모두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피터스 선교사는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아내의 사역을 기념하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결핵 진료소와 치과 수술실을 만들어 기증했다.
70세가 된 1941년 선교사직을 영예롭게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피터스 선교사는 1958년 미국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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