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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Logan, Mary L. (I1856~1919)

충청지역 여성 선교의 어머니
로간 선교사는 충청도 지역 여성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한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충청 지역 여성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메리는 1856년 미국 켄터키 주 데이톤(Dayton)에서 출생하여 줄곧 켄터키에서 자란 전형적인 켄터키 사람이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녀는 18세에 약제사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헌돈(J. S. Herndon)과 결혼했으나 곧 사별했다. 이후 메리는 자신의 삶을 젊은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리치몬드의 센트럴대학(Central University)의 YMCA와 YWCA에서 학생들을 위해 활동했다. 이 시기에 메리는 리치몬드 센트럴대학 예술대학장 로간(J. V. Logan)과 재혼했다. 그러나 메리 로간이 센트럴대학에서 청년사역에 헌신하던 1908년 여름, 위스콘신에서 휴가를 보내던 남편 로간마저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갑자기 두 번씩이나 남편을 잃은 로간은 평소 소망했던 해외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서 배운 많은 제자들이 외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유진 벨, 포사이드 등 그중 몇몇은 한국에서 헌신하고 있었다. 로간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 자신을 한국 선교사로 파송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회신이 오기 전인 1909년 봄, 한국에 자비량 선교사로 들어왔다. 그때 그녀는 53세였다. 로간 선교사는 내한 직후 목포에서 옛날 센트럴대학 재직 시에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유진 벨 선교사와 의사 오긍선을 만나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부터 정식 선교사로 임명되기까지 수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목포와 광주에서 선교 사역에 헌신했다. 
로간 선교사는 미 북장로교 선교부의 요청으로 1910년부터 10년 동안 청주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녀는 평일에는 가정을 돌며 성경공부반에서, 주일에는 주일학교에서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으며, 이들을 전도자로 길러냈다. 또 로간 선교사는 북장로교 선교부가 세운 여러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 청주 여성들에게 로간 선교사는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자애로운 어머니’였으며, 밀러 선교사의 부인 도티 선교사와 함께 청주 지역 여성 교육의 기반을 닦은 개척자였다.
로간 선교사는 1919년 12월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으며, 그녀가 살던 청주시 탑동 양관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133-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또한 청주 지역의 교인들은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로간 부인 긔렴비’를 1921년 6월, 청주제일교회 마당에 세웠다. 이 비석은 청주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 된 한글 비석으로 알려져 있다. 비석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메리카에서 나신 부인이 조선에 건너 와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어받아 힘을 다해 충성했네
우리 민족 구원하려 교육 구제 힘 다하고
12년을 하루같이 헌신하고 조선에서 별세하여 천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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