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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Baird, William M.(배위량)


부산.대구를 거쳐 평양 선교 개척
베어드 선교사는 개신교 선교 초창기에 평양 숭실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을 비롯하여 복음 전파에 힘썼으며, 특히 부산과 대구 등 지역에서 선교 개척자로 큰 공적을 남겼다. 윌리엄 베어드는1862년 6월, 미국 인디애나 주 찰스턴(Charleston)에서 태어나 하노버대학(Hanover College)과 매코믹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했다.
그는 신학교 시절에 이미 무디 부흥운동에 감화를 받아 선교사의 소명을 품고 있었으며, 역시 선교사를 준비하던 애니 아담스와 1890년 11월 결혼하고, 이듬해 2월에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당시 그는 신학교 졸업 후 콜로라도 주 델노르트(Del Norte)에서 작은 교회와 선교학교 책임자로 일하고 있던 중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던 마펫(Samuel Moffet)의 추천과 존 언더우드(언더우드 선교사의 형)의 후원으로 한국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베어드 선교사는 1891년 9월부터 1895년까지 5년 동안 부산에서 선교사역을 담당했다. 당시 그는 부산은 물론 경남 동부 전역과 대구 등 경북지역을 모두 담당했다. 그리하여 1893년에는 부산을 시작으로 밀양, 대구, 안동, 상주 등 경상도 거의 전역을 돌며 선교 대상 지역을 방문했다.
부산 유일의 선교사였던 베어드 선교사는 어린이를 위한 학교를 열어 신학문과 한문을 가르치는 등 선교 초기부터 교육을 통한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892년 시작한 부산 최초의 개신교회인 초량교회는 베어드 선교사가 시작한 사랑방예배(영선현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각 교단별 선교지역 분할 결과 부산을 비롯한 경남 지역을 호주장로교가 담당하게 됨에 따라 베어드 부부는 1896년부터 대구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베어드 선교사는 대구에서 활동한 최초의 선교사인 셈이다. 대구제일교회도 베어드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양에 '숭실학당' 설립
베어드 선교사는 1897년 평양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897년 10월 평양 자신의 사랑방에서 13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학당을 열었다. 그는 노동을 천시하던 당시 조선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학교 안에 자조사업부를 두어 스스로 작업을 하고 그 수입으로 학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도했다. 자립정신을 고취하는 것을 교육 제일의 목표로 삼은 것이다.
3년 후 이 학당은 숭실중학으로 성장하였고, 1906년에는 합성숭실대학으로 발전하였다. 합성숭실대학이라는 이름은 미국 북장로교와 북감리교 선교부가 공동 운영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붙인 이름이며, 이후 미국 남장로교, 캐나다장로회, 호주장로회 등 당시 한국에서 선교하던 교단이 연합하여 운영했다. 또 합성숭실대학은 대한제국 시절 공식 인가된 최초의 대학과정 학교였다. 숭실대학은 1938년 일제에 의해 폐교될 때까지 한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했으며, 105인사건, 3.1운동과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한 지도자들의 요람이었다.

베어드 선교사는 아내가 소천한 1916년 숭실대학 학장을 사임했으며, 그 이후에는 문서선교와 저술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그는 1911년 구성된 구약개역자회에 개역위원으로 선임되어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개역)하는 일에도 힘썼다.
베어드 선교사는 1918년 로즈 페트롤프(R. M. Pettrolf) 선교사와 재혼했으며, 1931년 평양에서 별세했다. 그의 무덤은 앞서 소천한 아내 애니 베어드 묘(평양 장산묘지) 옆에 마련되었다.
양화진에는 베어드 선교사 부부의 무덤을 평양에 두고 온 것을 안타까워한 그의 후손과 제자들이 1959년에 세운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More than conquerors thru Him that loved us.(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는 성경 말씀(로마서 8:37)이 기록되어 있다.

Baird, Annie A.(안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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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여학교 초대 교장-Baird, Annie A(안애리(安愛梨))
애니 아담스는 1864년 미국 인디애나 주 디캐이터(Decatur)에서 태어나 피바디여자신학교(현 웨스턴여자대학), 하노버대학(Hanover College)을 거쳐 워시번대학(Washburn University)을 졸업했다.
그녀는 베어드 선교사의 아내이자 동료로서 유쾌한 성격, 재치와 친절로 남편을 내조했으며, 원숙한 영적 깊이와 지적 능력을 발휘하며 동역했다. 평양에서 숭실학교와 외국인학교, 숭의학교 등에서 물리학, 동식물학을 가르쳤으며, 숭의학교에서는 초대 교장으로 재임했다.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애니 베어드 선교사는 찬송가사를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동참했다. <새 찬송가>에는 그녀가 작시한 찬송 2곡(375장 ‘나는 갈길 모르니’, 387장 ‘멀리 멀리 갔더니’)이 실려 있다.
또 그녀는 선교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엮은 이야기책(<Mrs. Bird's Fifty Helps>,<Inside Views of Mission Life>)과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Fifty helps for the study of the Korean Language>)를 펴냈다. 백낙준 박사는 그녀의 사역에 대해 ‘베어드 부인만큼 뛰어난 문학적인 성과를 남긴 여성 선교사는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애니 베어드 선교사는 1916년에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장산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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