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기념재단
> 선교사묘원 > 선교사 소개

선교사 소개

 
Jensen, Anders K.(전선) (1897~1956)

한민족의 비극에 온몸으로 동참한 선교사
젠센 선교사는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함께 나누며,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1897년 덴마크 내스버그(Naesborg)에서 태어난 젠센은 1914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대가로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젠센은 아이오와 주 코넬대학Cornell College(1924년)과 보스톤신학대학(Boston Theological Institute)에서 공부한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1927년). 
젠센은 대학재학 중 해외 선교를 소망하게 되었으며, 신학생 시절 선교사를 지원하러 간 감리교 해외  선교부에서 1926년 5월부터 미국 북감리교의 한국 선교사로 일하고 있던 메드 키스터를 만나 1928년 7월 결혼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1929년) 젠센 선교사는 약 10년 동안 인천, 수원, 이천 등 서울 근교 경기도 지역과 강원도 원주와 동해안의 도시들, 그리고 서해의 섬 지역을 오가는 순회 선교사로 일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젠센 선교사는 특정 교회에서 목회하기보다는 여러 교회를 오가며 선교활동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포로로 3년간 피랍 후 석방
일제에 의해 1940년 강제 추방당했던 젠센 선교사는 우리나라가 해방되자 곧바로 다시 선교사로 들어왔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날, 젠센 선교사는 개성에서 북한군에 의해 납치되고 말았다. 이때 천주교 메리놀선교회의 패트릭 바이런 주교, 토마스 퀸란 신부, 영국 성공회회의 세실 쿠퍼 주교, 감리교의 로렌스 젤러 선교사 등 수십 명의 외교관과 선교사, 서구인들이 함께 끌려갔다. 이후 3년 동안 젠센 선교사 일행은 압록강까지 끌려가며 죽음을 넘나드는 포로생활Death March을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젠센 선교사는 휴전을 두 달 앞둔 1953년 5월 모스크바에서 풀려나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납치된 지 3년 만에 가족과 재회한 젠센 선교사는 허약해진 몸을 추스른 다음 다시한국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미국 전역을 돌며 간증여행을 다녔다. 1954년 10월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 감리교 재건과 선교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젠센 선교사는 선교 사역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와 미국, 주한미군, 유엔군과의 협력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1956년 11월 20일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미국 고문단과의 만남에서 한국 사회의 현안에 대해 설명했으며, 이 모임이 끝난 후 돌아가는 길에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결국 포로 생활로 약해진 몸에 과로가 겹쳐 하나님을 부르심을 받아 양화진에 묻힌 것이다.

 
 

(04084)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합정동)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Tel. 02-332-4155~6 | Fax.02-332-4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