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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Gifford, Daniel Lyman(기보) (1861~1900)

언더우드를 도운 초창기 개척 선교사
기포드 선교사는 기독교 선교 초기에 주로 교육과 복음 선교 분야에서 활동했다. 
1861년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난 기포드는 시카고 매코믹신학교(McCormic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고, 1888년 10월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매코믹신학교를 졸업한 학생 중 처음으로 한국에 선교사로 온 이가 바로 기포드 선교사다. 그의 뒤를 이어 마펫(S. A. Moffet)과 베어드(W. M. Baird), 무어S. F. Moore 선교사가 매코믹 출신으로 한국에 왔다.
내한 초기에 기포드 선교사는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도우며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선교여행을 하느라 언더우드 선교사가 서울을 떠나 있을 때면 기포드 선교사가 그를 대신해 교회를 보살폈다. 1890년 같은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정동여학당(정신여학교의 전신)의 2대 학당장이던 메리 헤이든과 결혼했다.
기포드 선교사는 1893년부터 새문안교회가 남대문 부근에 마련한 기도처소에서 정기적으로 사경회를 이끌었고, 1894년 겨울부터 이듬해 8월까지 새문안교회 담임목사로 헌신했다. 이어 그는 1894년 동대문 부근 연못골에서 전도집회를 열고 그래함 리(G. Lee) 선교사와 함께 교회를 세워 그 이듬해부터 담임목사로 헌신했는데 이 교회가 바로 연동교회다. 이처럼 그는 연동교회 초창기 개척과 성장에 기여한 다섯 명의 선교사 중 한 사람이었다. 
기포드 선교사는 평소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선교잡지 <The Korean Repository>에 한국에 관한 많은 글을 기고하였다. 특히 그는 선교를 하면서 느끼고 체험한 사실들을  담담하면서 세밀하게 그려 <조선의 풍속과 선교(Everyday Life in Korea)>라는 책으로 펴냈다. 
시흥, 김포, 안성 등 경기도 남부지방을 순회하며 선교에 정열적으로 헌신하던 기포드 선교사는 결국 선교 여행 중 이질에 걸려 1900년 4월 10일 39세를 일기로 소천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기포드 선교사 부부 묘비에는 'Write blessed are the dead which die in the Lord.(기록하라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성경 말씀(요한계시록 14:13)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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