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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Durack, Julia Agnes (1925~1974)

양화진 유일의 천주교 수녀
듀랙 선교사는 양화진에 안장된 유일한 천주교 선교사(수녀)다. 
1925년 7월 미국에서 태어난 듀랙은 디트로이트의 머시간호대학(University of Detroit Mercy)에서 공부한 후 1955년 메리놀수녀회(Maryknoll Sisters)에 들어갔다. 그녀의 세례명은 마리아 루즈Sister Maria Luz였으며, 첫 해외선교사역은 실론(현 스리랑카) 캔디종합병원과 패디와트병원에서 간호 선교로 시작됐다. 실론에서의 선교사역을 마친 듀랙 선교사는 1962년 미국으로 돌아가 보수교육을 받은 후 1966년 간호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듀랙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첫 사역은 1966년 부산 메리놀병원 내에 산부인과를 개설하는 일과 함께 시작되어 6년 동안 이어졌다. 이어 1970년 충청북도 증평 메리놀병원으로 사역지를 옮겨 1년 여 동안 봉직했다. 증평 메리놀병원은 1956년 설립되어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와 결핵진료소를 두었으며, 1990년까지 열악했던 당시의 농촌 의료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기여했다. 
그러나 듀랙 선교사는 이곳에 온 직후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암 수술을 받았으며,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듀랙 선교사는 마지막 삶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1973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외국인묘지 부근에 있던 서울메리놀센터 사무원으로 일하며 마지막까지 헌신했다. 
듀랙 선교사는 1974년 1월 별세하여 절두산 순교자기념성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녀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세브란스병원에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되었고, 후일 양화진에 안장됐다. 그녀의 묘비에는 ‘Yes, I shall arise and return to my Father.(나는 다시 일어나 나의 아버지께 돌아가리라.)’라는 시편 영창이 새겨져 있다.

<참고>Mary-Knoll Sisters(메리놀수녀회)

메리놀수녀회는 메리놀외방전교회를 지원하는 자원봉사자 여성들에 의해 미국에서 1912년 설립되었고, 1920년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이 모임은 미국에서 여성들에 의해 최초로 설립된 외방선교 수녀회로, 정식 명칭은 성도미니코의 메리놀수녀회다. 메리놀수녀회는 설립 초기에 미국 내 이민자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고, 1921년 홍콩과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해외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24년 평북 의주에 6명의 수녀들이 선교활동을 시작한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주로 북한 지역에서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들과 함께 의료 및 교육사업을 전개했다. 
메리놀외방전교회(Mary-Knoll Missioners)는 1911년 미국 뉴욕에서 월시J. A. Walsh 신부와 프라이스R. F. Price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 메리놀은 ‘마리아의 언덕’Mary's Knoll이란 뜻이다. 천주교외방선교회의 한국 선교는 그때까지 유럽 천주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미국 천주교회의 선교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메리놀외방전교회는 1924년 편안북도 신의주에 신부와 수녀를 파견함으로써 한국 선교를 시작했으며, 주로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던 메리놀외방전교화와 수녀회는 1950년 다시 돌아와 부산 메리놀의원을 설립했고, 1956년에는 충청북도 증평성당 안에 메리놀의원을 개원했다.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시작된 신용협동조합은 우리나라 신용협동조합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고, 1964년 개교한 부속 간호학교는 오늘날 부산가톨릭대학교의 모태가 되었으며, 증평메리놀의원은 이후 30년 동안 활동한 후 1987년 문을 닫았다. 이후에도 강화도와 백령도, 소록도, 울진 등 의료혜택이 부족한 벽지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설립 100주년을 맞은 이후 메리놀외방전도회와 수녀회는 한국보다 열악한 제3세계 선교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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