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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Appenzeller, Alice R.(1885~1950)

한국에서 태어난 첫 서양 아이   
아펜젤러 선교사의 딸 엘리스는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아이로 평생을 한국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엘리스는 1885년 11월, 서울 정동에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조선으로 오는 동안 잉태되어 있던 아이가 바로 그녀였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도 바로 그녀다. 엘리스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하던 중(1902년) 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해난 사고로 순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엘리스는 중국 산동성 즈푸외국인학교를 거쳐 미국 보스톤에 있는 웰즐리대학Wellesley College에서 공부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고교 교사로 일하다가 30세 되던 해인 1915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태어난 한국에 돌아온 선교사 첫 임기 7년 동안 이화학당의 교사로 일했으며, 첫 안식년에는 콜롬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에서 교육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1922년 이화학당 6대 학당장에 취임했다.

평생을 한국 여성교육에 헌신
엘리스 선교사는 천대받던 한국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인권시장을 위해서는 여성들에게도 폭넓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화학당을 성장시키는 데 주력했다. 1925년에는 이화학당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 교육 기관인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키고 초대 고장에 취임했다. 특히 대규모 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넓은 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국에서 모금운동을 벌여 기금을 확보했으며, 이를 토대로 1935년 3월, 신촌에 새로운 캠퍼스를 마련했다. 엘리스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이화학당을 위해 헌신했다.
엘리스 선교사는 한국 여성 교육은 장차 한국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매년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일본과 미국 등으로 유학을 보냈으며, 학업을 마친 뒤에는 이화로 돌아와 교사와 교수로 일하게 했다. 특히 자신의 후임은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한국인 제자 김활란 박사에게 학교장직을 물려주었다. 교정 자리를 물려준 뒤에도 그녀는 명예 교장으로 남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엘리스 아펜젤러 선교사는 교육 사업에 전념하는 한편 나뉘어 있던 감리교를 통합하는 일과 선교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1932년에는 감리교 목사로 안수받았다. 일제의 강압으로 1940년 미국으로 돌아간 엘리스 선교사는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스카릿대학Scarritt College에서 4년 동안 교수로 봉직한 후, 동생 헨리 다지 선교사가 있던 하와이 호놀룰루제일교회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6년, 해방된 한국으로 돌아온 엘리스 아펜젤러 선교사는 이화여자대학의 명예총장이 되었다.  1950년 2월 20일, 이화여대 채플 시간에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그날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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