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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Campbell, Josephine E. P.(강모인)


미국 남감리교 첫 여성선교사로 내한

조세핀 캠벨 선교사는 배화학당을 세워 여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1853년 4월, 미국 텍사스 주 웨이코(Waco)에서 감리교 목사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1878년 캠벨 목사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으나, 27세 때 남편과 사별하였고, 곧 이어 두 자녀마저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순식간에 연이어 가족을 잃는 시련을 겪은 캠벨은 선교사가 되어 남은 일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시카고의 간호학교와 사범학교에서 공부하여 간호사 자격을 얻었으며, 34세 되던 1887년에는 중국에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로 파송되어 상하이와 쑤저우에서 10년 동안 다양한 선교활동을 하였다. 중국에서의 선교사역은 훗날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에 바탕이 되었다. 캠벨은 1897년 10월, 남감리회가 파송한 첫 번째 여성 선교사로서 중국인 양녀(여도라)와 함께 한국에 왔다. 당시 그녀의 나이 44세였다. 그녀는 서울에서 여성들을 위한 선교활동을 모색하다가 1898년 10월 2일 고간동(지금의 종로구 내자동)에서 학당을 열었다. 초창기 학당 운영 경비의 일부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선교사자녀연합회에서 보내준 헌금으로 사용하였기에 학당 이름은 ‘캐롤라이나학당’이라고 불렸다.

배화여학교를 설립
처음 학당을 열 때는 남녀공학이었지만, 1902년 남학생들을 배재학당으로 보낸 이후 여학당이 되었다. 그 후 1903년 ‘여성을 아름답게 꽃 피워내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배화학당’이란 이름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이후 약 10년 동안 캠벨 선교사는 배화학당의 설립자 겸 학당장으로 학교 발전에 헌신했다. 캠벨 선교사는 1898년 8월부터 학당 기도실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 예배를 토대로 1900년 4월에는 잣골교회를 창립했다. 이어 1901년 9월, 학당 안에 미국인 루이스 워커의 기부금으로 예배당을 신축하여 ‘루이스워커 기념예배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10년 두 번째 안식년 휴가를 맞은 캠벨 선교사는 배화학당 교장직을 스콜스 선교사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다시 돌아왔다. 이후 캠벨 선교사는 교육 영역은 물론 전도부인 양성과 병원 사역, 성경공부반 인도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선교활동에 헌신했다. 이처럼 1900년대 초 감리교 선교사역에서 캠벨 선교사의 역할은 여느 남성 선교사 못지않았다.
1918년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한국에 낙농업을 보급하기 위해 준비했으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디프테리아를 앓았다. 그녀는 더 집중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1920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내한 4개월 만인 1920년 11월 12일 67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묘비에는‘Blessed are the dead who die in the Lord.(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성경말씀(요한계시록 14:13)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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