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기념재단
> 선교사묘원 > 선교사 소개

선교사 소개

 
Heron, John W.

양화진에 안장된 첫 선교사
헤론 선교사는 1890년 7월 28일, 양화진에 최초로 안장된 인물이다. 
헤론은 1856년 영국 더비셔(Derbyshire)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살 때  온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테네시 주에서 성장했으며, 메리빌대학(Maryville University)과 테네시대학(University of Tennessee)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20대에 모교의 교수로 초빙 받을 만큼 수재였다. 헤론은 1884년 4월,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서 한국 선교사로 정식 임명을 받았으며, 같은 병원에서 일하던 동료의사의 딸 헤티와 결혼했다. 그는 후일 장로교 선교부에서 활동한 장모의 열성에 감복해 의료선교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1885년 6월 20일 조선에 들어왔다. 헤론 선교사는 언더우드 선교사보다 먼저 선교사로 임명받은 최초의 북장로교 조선 선교사였으나, 일본에서 선교지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지체한  탓에 언더우드보다 약 두 달 뒤에 내한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알렌 선교사를 도와 제중원 의사로 일했으며, 알렌 선교사가 미국 공사관으로 자리를 옮긴 1887년부터 제중원 2대 원장으로 병원 운영을 맡았으며, 왕실의 시의가 되었다. 이러한 공로로 헤론은 1888년 고종으로부터 정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품계를 받았으며, 혜참판惠參判이라고 불렸다.
당시 조선의 위생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천연두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연례 행사처럼 창궐해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갔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일부 선교사들은 선교 사역을 포기하고 귀국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헤론 선교사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진료 활동을 했고, 농촌 지역 순회 진료는 물론 복음전도에 힘T는 등 진심으로 조선인들에게 사랑을 쏟아 부었다. 그는 의사이자 선교사로서 강한 희생정신과 사랑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어떠한 어려운 환경 가운데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헤론 선교시는 가난힌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제중원의 위치를 정동에서 구리개(현 을지로2가 부근)로 옮겼으며, 병을 고치는 일에는 자기 몸을 아끼는 일이 없었다.

의료와 복음 선교에 헌신하다 5년 만에 순직
헤론 선교사는 의료 선교 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개척 선교사로서 소임을 다했다. 성서번역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889년 조선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창설을 주도하는 등 문서선교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는 1889년에 미국 북장로교와 호주장로교가 연합하여 설립한 공의회 회장을 역임하며 교단연합사업에도 저극 동참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의료 선교로 많은 환자들을 보살피며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몸이 쇠약해진 헤론 선교사는 결국 이질에 걸려 발병 3주 만인 1890년 7월 26일 별세하였고, 이틀 뒤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내한한 지 5년 만에 죽음을 맞게 된 그는 당 시 34의 젊은이였다. 게다가 그에게는 자신을 선교사로 이끈 아내 헤티와 두 딸이 있었다. 서울에서 죽은 최초의 서양인인 헤론 선교사의 장지문제로 인해 양화진에 외국인묘지가 조성되었다.
헤론 선교사의 묘비에는 ‘The Son of God Love me, and Gave Himself for me.(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사 자신을 내게 주셨다)’라는 성경말씀(갈라디아서 2:20)이 기록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아내 헤티 게일 선교사의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Gale, Harriet G. Heron

혜론1.jpg

헤론 선교사의 아내 헤티 깁슨은 1860년 미국 테네시 주 존스보로(Jonesborough)에서 의사 아버지와 선교에 열정을 지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헤티는 1884년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임명된 헤론 선교사와 결혼하고 이듬해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헤론 선교사가 장모의 선교열정에 큰 감명을 받아 선교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고백할 정도로 헤티의 가정은 선교의 열정이 넘쳤다. 
한국에 온 헤티 선교사는 헤론 선교사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헤론 선교사의 사역을 내조했으나 내한 5년 만에 헤론 선교사가 별세하여 홀로 남게  되었다.
1892년 게일 선교사와 재혼한 그녀는 결혼과 함께 원산으로 이주하여 게일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도왔다. 그러나 8년 만인 1908년 3월에 결핵에 걸려 별세하여 양화진 헤론 선교사의 묘에 합장되었다. 양화진에는 첫 남편 헤론과 외손자(James M. Gale), 이렇게 세 명의 헤론 가족이 안식하고 있다. 

 
 

(04084)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합정동)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Tel. 02-332-4155~6 | Fax.02-332-4157